전북특별자치도는 지역적·역사적·인문적 특성을 살려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도시, 생명경제도시로의 도약을 위해 설치되었다. 생명과 안전을 목표로 친환경 자원을 활용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성장방식의 경제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생명경제도시의 의미를 알아보는 ‘생명경제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그 일곱 번째 시리즈로 사진가이자 농부인 정주하 교수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농촌생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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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군 경천면 구재마을 자택에서 포즈를 취한 정주하 교수. |
| # 사진가, 농부로 소개되기를 원하다
사진가이자 농부로 소개되길 바라는 정주하 교수는 인천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서 공부하고, 독일 쾰른 F.H 자유예술대학 사진과를 졸업한 후 1996년부터 백제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로 근무하고 최근에 정년 퇴임했다.
주로 한국의 자연과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풍경과 인물을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고, 2015년에는 동강국제사진상을 수상했다.
정주하 교수는 자신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하여 “내가 사진을 만든 줄 알았더니 사진이 나의 삶을 만들었음을 알았다”고 말한다.
“삶과 작업이 일체화되어 사진의 소재를 정하게 되고 그 소재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삶도 그것에 맞추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삶과 작업의 일체화’는 『땅의 소리』(1999), 『불안, 불-안』(2008), 『서쪽바다』(2004),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2012) 등 작품집의 명칭으로도 나타난다. 정 교수는 전주를 거쳐 완주군 경천면 구재마을에 정착해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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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집 『불안, 불-안』(2008)에 수록된 영광 가마미해수욕장 풍경. |
| # ‘마을사업’-‘마을살이’ 무엇이 중할까
구재마을은 각종 마을사업으로 잘 알려진 싱그랭이마을과 인접한 신흥계곡 가는 길목에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정부지원사업 평가자로서 마을사업을 종종 경험하는 필자는 ‘경제공동체로서의 마을’에 대하여 ‘이장’으로서 경험한 바를 물었지만, 정 교수의 답변은 구체적인 마을사업의 추이가 아닌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을이란, 조용히 살려던 사람들이 실패하고 실망하고 떠나는 곳”이라는 그의 답변에는 ‘손톱 밑의 가시’를 빼주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농촌정책의 그늘이 드러난다. 주민들의 ‘실패’와 ‘실망’은 마을단위 자원과 정책 수요에 대한 기초조사를 근거로 분석하고 조망하지 못한 채 개별적, 단기적인 사업 단위에서 농촌정책이 이행된 결과이기도 하다.
전북특별자치도 농촌활력과 발주로 전북연구원이 수행한 ‘전라북도 농촌과소화정책지도 제작 연구’에서는 행정리와 자연마을의 과소화·고령화 실태가 파악되었다. 조사 결과가 농촌의 주거환경·복지·교통 및 기반시설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에 대응하는 정책 수립에 활용되길 기대한다.
이 조사 과정에서는 2018년 기준으로 전북에는 약 8600개의 자연마을이 존재하며, 이 가운데 소위 ‘마을사업’에 참여하는 곳은 300여 개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마을사업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선도그룹에서는 마을 리더들이 의기투합하여 여러 지원사업을 받아 마치 중소기업과 같은 경제공동체를 이룬다. 싱그랭이마을 같은 곳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간그룹은 사업 규모도 작고 사업 수행능력이 낮아 마을 외부로부터 사무장을 고용하게 되는데, 이 경우 사무장 인건비 대비 마을로 환원되는 금액이 적다. 하위그룹의 좋지 않은 사례에서는 총체적으로 관리가 부실해 공동체 사업 형식을 갖추면서 사실상 마을 리더에 의해 경영체가 사유화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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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에서 수거한 오염토를 쌓아놓은 모습.(2015) |
| # 개발위원장에서 ‘마을 이장’이 되다
구재마을로 이주한 정 교수는 노인정에 모여 식사를 함께하게 되면 늘 설거지를 하고 창고 고치기 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을 어르신 40여 명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했다.
정 교수는 2017년부터 개발위원장 역할을 맡았고, 마을주민들로부터 간곡한 요청을 받아 이장직을 수락한다. 당시 전임 이장은 3년 임기 중 2년여를 남기고 스스로 그만둬 비어있는 상태였다.
정 교수가 이장을 맡은 2018~2021년, 구재마을 공동체는 40세대 규모였고, 마을 회의에는 15~20명이 참석했다.
마을 공동사업인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도 적극적으로 공모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전주에 기반을 둔 단체에서 완주군의 사업을 수주했고 구재마을이 지정받아 시작됐다.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은 태양광 패널을 10개 가구에 설치하고, 보일러 청소를 하고, 창문에 필름을 입히는 예산 1억여 원 정도의 사업이다. 그 밖의 사업은 더는 진행할 수 없었다.
정 교수는 이장 임기를 마친 후에도 재선되었지만, 마을주민들의 의사와는 달리 이장 임명이 면장에 의해 지금까지 보류되고 있다. 구재마을은 신흥계곡 상류의 종교단체 양우회와 환경오염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지만, 양우회에서 21명이 전입해 지금은 80세대 120명이 거주하는 마을로 변모됐다.
# 작은 마을일수록 ‘농촌기본소득’ 필요
구재마을 다수의 주민은 감과 곶감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개인사업자이며, 콩나물공장에 마을주민 여러 명이 고용되어 있으나 공동체 사업이 아니라 개인사업체다.
정 교수는 “작은마을 단위에서 마을 공동의 사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을회관에서 소일거리로 수세미 등을 만들어 파는 것은 좋겠지만, 예를 들어 콩나물공장에서 마을주민 모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나머지 사람들의 불만은 해소되기 어렵다”면서 “그보다는 마을단위로 교통약자, 에너지 약자에 대한 보호가 시급하다. 대부분 연로해서 이동에 대한 보조가 필요하다.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을 우선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농촌을 생산수단으로만 보는 도시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북자치도의 조사에서처럼 ‘마을사업’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마을살이’를 하고 싶은 주민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전북자치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농촌정책 기조는 마을을 경제공동체로 보고 소득증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을사업’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수익 배분이나 사업참여 기회에 대해 불만이 쌓인다면 ‘마을살이’는 불편해진다. 반면, 농촌을 둘러싼 논의에서 생활공간으로서의 마을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정 교수는 “농촌이 도시에 종속되면서 발생하는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풀과 산소를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에 농촌의 공익적 가치, 근원적 가치에 대하여 농촌기본소득을 통해 농촌에 환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촌기본소득은 여러 전문가에 의해서 지난 수년간 그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2022년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시범사업이 시행되어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지난해 12월 3일, 국회에서는 농어촌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개인에게 연간 180만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담은 「농어촌기본소득법률안」이 발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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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의 목장에서 촬영한 소.(2018) |
| # 우리 농촌을 식민지화 하지 말아야
“농촌을 식민지화하지 말라”는 정주하 교수의 주장은 먹을거리의 식민지화뿐만 아니라,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문제로 이어진다.
정 교수는 “유럽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전기요금의 거리차등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공평하다. 농촌은 에너지 생산기지로서 희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수요가 많은 수도권의 한강 주변에는 그린 택소노미를 적용한다고 하니 소형 원자력발전소를 수도권에 지어라”고 강조한다.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란, 어떤 산업 분야가 친환경 사업인지를 분류하는 체계로 녹색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산업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다. 유럽에서는 2023년부터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가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가스가 포함되고 원자력발전은 제외되어 논란이 있다.
# 환경과 지역문제 다루는 사진작품들
정 교수는 유학 시절, 졸업 전시 테마는 ‘사진적 폭력’이었다. 정 교수는 “생태적 폭력에 대한 인식이 현대 예술가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쳐서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 과정과 주제에 반영되고 있다”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 문제를 주요 주제로 삼아 작품을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행동 변화를 촉구할 뿐만 아니라 주제와 메시지의 변화, 재료와 기법의 변화, 예술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 정서적·철학적 변화, 예술의 글로벌 네트워크화 등 광범위하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예술작품에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사진가로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고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가치관을 작품에 담고 있다”고 덧붙인다.
#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기록하다
정 교수의 원자력발전소를 둘러싼 문제의식은 2008년 작품집 『불안, 불-안』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2011년 11월 6일 처음으로 후쿠시마를 방문한 이래 2023년 11월 8일까지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수차례 이곳을 방문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2012),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2016)을 출간하고, 일본 현지와 국내에서 작품전을 개최했다.
그는 “사진 작품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13년이 지났으나 깊은 성찰과 대책 없이 핵오염수를 해양 투기하고 있어 국제 사회 우려가 큰 상황에서 일본 사회는 의도적인 외면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는 오염수 투기에 반발하고 있으나 원전 안전과 확대 등 핵사고가 던지는 문제의식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주하 교수에게 예술가,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는 “자기 작업의 대상이 되는 물질뿐만 아니라, 주변의 환경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환경의 관계 등에 대해서 매우 예민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는 동시에 그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대를 이해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어떤 변화나 변동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존재이며, 예술이란, 어떤 ‘징후에 대한 대응’이다”고 설명한다.
시인 이상화의 동명의 시에서 차용한 정 교수의 사진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원전사고에 의해 파괴된 후쿠시마의 일상뿐만 아니라, 우리 농촌의 현실이 중첩되어 있다.
‘먹을거리의 식민지’, ‘에너지 생산의 식민지’로 전락한 농촌에 실의(失意)를 넘어 회복해야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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